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런 다음 원형 경기장에서 양국의 장관과 장군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서로 달려들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자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엉뚱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보다 그게 더 간단하고 낫다는 것이다.>
소설의 한 부분을 옮겨적습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께서 "레마르크 전집"을 사셨습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검은 오벨리스크", "사랑할때와 죽을때", "개선문" 등.
그때는 책을 읽지 않고 밖에서 뛰어놀기 바쁜 시절이었습니다.
방학이라고 해도 만화책을 주로 보았지 문학서적은 멀리했습니다.
게다가 책은 세로쓰기였습니다. 읽기에 아주 불편했습니다.
이사를 몇 번 하는 중에 이 전집은 사라졌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열 번 넘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 나이와 그 시절 우리 나이가 비슷해서 공감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언급한 소설 한 대목이 위에 옮겨적은 부분입니다.
소설에서 전쟁이 왜 발생했는가를 서로 묻는 부분이 나옵니다.
"모욕을 받아서"라고... 하지만 그곳에 있는 병사들 모두 "(나는) 모욕을 받은 적이 없는데" 라고 말합니다.
"민족이 모욕을 당해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말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받지도 않은 모욕 때문에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전쟁의 발발 이유도 모르고, 전쟁에서 얻게 되는 이익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실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와 같이 전쟁을 치르는 동료들이 겪는 내용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굴곡이 없이 전장의 실상을 자세히 표현합니다.
저도 다섯 번 정도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었으니 횟수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이번에 읽으면서 더 공감을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에게 반감을 표현하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들을 죽이고, 전투과정에서 참혹한 부상과 죽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의 1/4 정도 읽었을 때 참혹한 상황을 상상하다보니 많이 우울해졌습니다.
주변에서 제 모습을 보고 "안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출퇴근하면서 읽을 분량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가장 잘 묘사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설 하나를 더 추천한다면 시배스천 폭스(Sebastian Faulks)의 "새의 노래"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호 전투를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대학시절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언급했던 친구와는 지금도 자주 만납니다.
많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 도움되는 조언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우정으로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방황과 낯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때 옆에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친구의 책읽는 모습과 박식한 지식을 보며 많은 부분을 본받으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책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추천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