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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ife

땅끝마을.

이나기꺼 2022. 11. 27. 00:30

<오래전에 적었던 글을 봅니다. 다시 읽어보며 저때는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1999년 4월 22일 쇠 날.
  여행.
  내일은 3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땅끝 마을. 반도의 끝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남쪽 바다와 서쪽 바다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신기할까? 2년 전,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달렸던 기억이...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모습을 차 속에서 바라 봤을 때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내는 것이 좋을까?  자연의 거대한 모습에 억눌려 완전히 주눅이 든 모습으로 차를  세워두고 멍하니 하늘과 바다만을 바라보지 않았나.
  동쪽 바다의 깨끗하지만 허전한 느낌과는 분명 다를 것 같은데. 남도의 끝에는 분명 자자한 섬들을 많이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예전 오두산에서 바라보던 서산낙일을 볼 수 있을는지. 수평선에 걸린 해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는데. 
  
  병 속의 새. 소설 만다라에 나오는 "병속의  새"가 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틀, 규정, 지침, 규약, ... 행동, 사고, 생활, 삶을 제한하는 수많은 규범들. 나이가 들면서 저런한 규범이나 규칙이 너무 많다. 어떤 때는 규범이나 규칙이 없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결국 난  날 가두어 버리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 속에 날 가두어 버린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묻혀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난 완전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조직에 묻혀가는 날 발견할 때 난  저 "병속의 새"를 생각한다.  지금의 날 가두고 있는 저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여행을 통해 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작년 라디오에서 들었던 말.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는 느끼는 것이 많고, 꼼꼼히 세운 계획을 따라 떠난 여행에서는 얻는 것이 많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조정래 문학을 다시 느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1999년 4월 23일 흙 날.
  아! 반도의 끝! 이 곳에서 모든 것은 멈춰지는 것 같다. 산줄기도 여기서 끝맺음을 하고 있고 땅 위의 삶도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우뚝 솟아있는 땅끝을 알리는 말뚝. 그 앞에서  두 손을 벌려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를 모두 품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흙 날. 드디어 난 날 가두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먼 거리를 가야하기에 차를 손보고, 차를 닦은 후 늦은  3시에 드디어 출발. 대구에서 해남까지 거리는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라는 사실. 오늘  중으로 해남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예 일정을 늦춰 오늘은 벌교나 보성 쯤에서 묵을까? 모든 염려는 뒤로 접어 둔 채, 일단 떠나고 보는 거다. 시간에 쫓겨 제대로 못보고, 생각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시간에 얽매여 결국  시간이라는 병 속에 갇히지 않으려면 철저한 일정 계획보단  약간 느슨하지만 저러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느긋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령에서 동생을 태운다. 일단 순천 쪽으로 가기로 하고 2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나선다. 2년 전의 풍경과는 무척 다른 모습.  이 차이는 무엇일까? 계절이  다른 탓일까? 아니면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일까?
  2년 전 가을. 경산에서 창녕을 거쳐  순천으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했는데. 10년간 볼 코스모스를 그 날 하루만에 다  본 것 같다는 생각이...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그 길에는 코스모스는  없고 온통 연두빛의 새순만이 가득하고, 도로는 개발사업으로 온통 파헤쳐져 있고, 산과 들에는 봄꽃들이 강하게 와 닿곤 한다. 그리고 어느샌가 보리가 자라고  있고,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네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역정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바로 길에서 삶을 볼 수 있다고 할까? 사람은 길을 만들고 삶은 길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난 고속도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길만 있지 삶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변화도 없고, 무료하고... 하지만 산과 강, 바다, 마을과 사람을 볼 수 있는 길에서는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좋아 이번 여행에서도 일반 국도와 지방도로를 택했다.


  멀리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산청과 하동을  지나면서 차는 섬진강을 따라 방향을 잡는다. 백운산 자락을  끼고 돌면서 광양으로 접어들고  순천을 향해 달린다.
  드디어 순천. 소설 태백산맥에서 나타나는 사건의 발단은 여수, 순천 사건부터 시작된다. 소설의 첫머리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저녁을 먹는다. 꼬막. 엄청나게 크다. 내륙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크기의 꼬막을 보면서 '태백산맥'에서 '외서댁'의 생애를 한번 생각해 본다.
  저녁을 먹고 나서 벌교를 향해 차를 몬다.  잘 닦여진 2차선의 도로. 그것을 보면서 영호남의 균형있는 발전이 이제야 가능해진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토요일 저녁치곤 차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차가 적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국은 지금까지 불균형한 발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은 땅 덩어리에서 대립하고 갈등을 겪어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만이 가득했던 지난 날이 아니었을까?
  벌교 읍을 지날 때 쯤, 잠시 도로를 벗어나 마을로 접어든다. 소화다리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하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고 날이 어두워진 후라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기대했던 벌교완 조금 다른  인상만을 뒤로한 채 보성으로 향한다. 보성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잠 속으로.


  해 날.
  해안을 낀 도로를 향한다. 보성에서  율포를 향해 가면서 오른편에 보성다원이라는 곳에 들른다. 입구까지 차를 몰려다가 울창한 나무를 보면서 갑자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길옆에 주차시킨  후 차에서 내려 걸어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나무줄기들. 나무의 이름을 모르겠다.   키가 크고 쭉 뻗은 것을 보면 전나무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전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나무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병 속의 새'에서의 병의 입구와 비슷하다는 생각. 모든 나무 줄기들이 그 입구를 향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입구는 좁다. 저 입구를 통해서 병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보성 다원. 산 모습을 원추형으로 묘사한다면 원추형의 반이 차밭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차밭은 일자로 등고선을 따라 나열되어 있다. 마치 도열해 있는 군인들 같이. 하지만 산중턱과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차밭의 모습은 원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이 산세에서 민족성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굽은  것 같으면서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모습. 풍자, 은유의 민족은 바로 이러한  산과 강에서 빚어지는 저 선에서 나타나는 정서가 아닐까?


  강진, 해남을 지나면서 드디어 땅끝이 가까워 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 가득한 기대. 완도에 들어가 섬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드디어 땅 끝 마을이라는 글자를 확인하고 바닷가 선착장으로. 아. 드디어  반도의 끝. 선착장의 바위에서 바라본 서쪽에 웬 말뚝이. 저곳이 반도의 끝이구나. 우리는 그 말뚝을 향해 나아간다. 조금 험한 바위를 짚고 땅 끝에 선다.  조국의 산 줄기는 바로 여기서 끝난다. 이 땅은 땅과 산 그리고 내가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선으로 계속 연결이 되고 어느 한 선에  닿으면 이 반도에서는 못가는  곳이 없을 것 같은데. 뚜렷이 볼 것도 없고 단지 땅끝을 통해  조국을 느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자유.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그리고 산을 바라본다.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  아, 이곳이 내가  사랑한 대한민국이라는 육지의 마지막인가? 바다를 바라보며 2년 전 전라도  땅을 밟고 지리산을 바라본 느낌이. 지리산은 7천만을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다는 7천만의 민족과 그들의 삶의 터전까지도 다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감싸줄 수 있을 것 같고.


  동쪽 바다에 비해 깨끗하지 못한 바닷물. 하지만 남쪽 바다에서는 외롭지 않을 만큼 섬이 있고, 염전이 있고 그리고 동해보다 많은 배가 있고 그리고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그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삶을 이루어가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땅끝을 뒤로한 채 어두운  길을 헤치면서 대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속 난 이 여행을 통해  자유로워졌는가를 물어본다. 그리고 병  속의 새를 밖으로 빼낼 방법을 찾았는가도 물어본다.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만다라'에서는  깨달음을 통해 병의  입구가 넓어지고 새는 넓어진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난  그 깨달음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소설에서의 결론이  실제 내가 속한 집단에서도  같은 방법의 적용이 가능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계속 풀어가야할 숙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유. 아직도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자연에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바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옆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자유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만의 자유가 아닌 우리들의 자유를 앞으로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것도 또 다른 숙제로 남는다.


  숙제를 풀려고 떠난 여행에서 또 다른  숙제를 안고 돌아온 여행이지만 많이 보았고 많이 느꼈고 많이 생각한 여행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언젠가 반도의 북단, 민족의 영기가  숨겨져 있는 백두산 여행을 생각하면서 이천리의 여행을 마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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